엊그제 느닷없이 서울지방경찰청 제4기동단에 속한 41중대가 해체됐다. 더 이상 매일의 서울중대 근무배치를 보여주는 경력일보에서 '41중대'라는 글자를 눈을 씻고 봐도 찾을 수 없다. 41중대는 의경으로 이루어진 의경 기동대로서 그동안 집회관리, 시위진압의 일선에서 막중한 임무를 수행해온 정예 기동대중 하나이다. 이런 중대가 내부의 자체사고로 인해 해체됐다. 이번에 새로 서울지방경찰청장으로 부임하신 조현오 청장님께서 전임지인 경기청에서 재직하실 때도 전의경 자체사고에 민감하시다고 들었는데, 이렇게 순식간에 서울청 소속 중대가 해체되는 것을 본 것은 군생활을 하면서 처음이다.
이제는 위와 같은 4기동단 조직도에서 '41중대'란 글자가 지워진다.
일종의 '본보기'로 중대자체를 해체시켰다는데, 같은 서울하늘 아래에서 먹고자는 입장에서 안타깝기 그지없다. '만약 우리 중대라면?'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는 것이다.
아는 사람은 다 알듯이 전의경중대의 자체사고는 하루이틀 문제된 것이 아니다. 자체사고란 부대 내에서 터지는 온갖 내부사고를 의미하는데, 주로 구타, 가혹행위를 견디지 못한 대원이 상급기간인 해당 중대 소속 지방청에 '찌르면' 자체사고로 기록된다.
구타나 가혹행위는 전의경 중대의 전통처럼 예전부터 많이 있어왔는데, 보통 쉬쉬하면서 중대 내에서 자체적으로 해결하려는 경우가 많다. 상급기관에 자체사고 사실이 알려지면 대외적인 부대 이미지 손상과 평가절하, 기간요원의 문책, 최악의 경우 이번처럼 부대를 해체시키기 때문이다.
이처럼 자체사고의 여파는 실로 엄청나다. 소속 지방청에서 사고경위를 조사하기 위한 감찰이 파견되고, 그 중대는 '자체사고 중대'로 기록되며 일종의 낙인이 찍힌다. 해당 부대는 그 후에도 알게 모르게 갖가지 불이익을 받고, 부대 지휘관들에게 대원관리의 책임을 물어 엄중문책한다. 당연히 대원들 간의 분위기도 험악해지고, 모두가 함께 힘든 나날을 보내게 된다. 피해자의 경우에는 원하는 다른 중대로 재배치될 수 있는 기회를 주고, 가해자 또한 다른 중대로 재배치 받는 경우가 많다. 보통 우리들은 이런 것을 '날라간다'라고 표현한다. 굳이 표준어로 하자면 '날아간다'이겠지만..표현의 예시, "이번에 XX방순대에서 고참 찌른 새끼 하나 날라온대."
위와 같은 가해, 피해대원처리와 별개로 지방청에서 자체사고에 대한 후속조치로 행하는 부대해체는 실로 끔찍한 일이다. 어느 인간이나 자신이 소속한 집단에 대한 소속감을 갖고 있다. 그런 소속집단이 한 순간에 공중분해되어 매일 가족처럼 먹고자는 부대원 전부가 이산가족처럼 흩어진다는 것은 정말 슬픈 일이다. 그 중대를 전역한 이로서도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을 것이다. 좋거나, 싫거나 내가 전역한, 내 이름이 2년간 어딘가에 붙어있었던 부대인 것이다.
서울을 제외한 나머지 지방의 경우, 중대해체는 비일비재하다. 서울에 비해 상대적으로 전의경을 활용한 치안수요가 적은 지방은 상급기관에서 자체사고를 이유삼아 해당 중대를 가차없이 하나둘씩 없애고 있는 것이다. 전의경인력감축이라는 큰 틀안에서도 이런 조치는 정당화될 수 있다. 서울청은 전의경치안수요가 많은 관계로 중대해체라는 극약처방은 오랫동안 없었던 편인데, 이번 41중대해체는 그런 면에서 많은 이들에게 큰 충격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내가 속한 중대도 이런 자체사고의 파고를 피할 수는 없었다. 내가 자대배치 받기 바로 전에 당시 하급기수 대원이 자신을 괴롭히던 상급기수를 서울청에 '찌른' 것이다. 중대해체까진 안갔지만 위에 열거한 후폭풍 때문에 모두가 많이들 힘들어했더랬다.
지금은 21세기, 2010년이지만 아직도 병영문화는 시대를 뒷걸음질하는 전의경 부대가 더러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막상 내가 고참이 되어보니 그런 병영문화 속에서 발생하는 자체사고가 꼭 '악질 고참대원'때문만인 것은 아니다. 시간이 가면 갈 수록 군생활을 보이스카웃으로 착각하는 신병이 많아지는 것도, 조금만 윽박질러도 그것을 가혹행위로 치부해버리는, 온실 속 화초처럼 자란 사람들이 많아지는 것도 문제라고 본다.
문제의 원인과 결과분석을 떠나서 부대라는 울타리 안에서 살아가는 한 명의 군인으로서, 자신의 부대가 하루아침에 사라진다는 것은 그 무엇보다 슬픈 일이다.
난 경찰 지휘부가 이런 '파격적인 해결방법'은 앞으로는 좀 지양했으면 좋겠다. 다른 여러방법으로 전의경 자체사고 근절에 힘써줬으면 어떨까 싶다.
'41중대'라는 부대이름 아래에서 만든 수 많은 부대생활의 추억을 등지고 남은 군생활을 해야하는, 혹은 했던 동료대원들과 전역자들에게 이 자리를 빌어 심심한 위로를 전한다.
41중대 해체의 원인이 된 자체사고는 구타사고였음이 확인됐고, 복수의 가해대원은 중징계 및 형사고발됐다. 피해대원은 6~7일짜리 청장특박을 받고, 다른 중대로 전출갔고, 해당 지휘관들 또한 중징계를 받았다.
서울청장님께서는 앞으로도 자체사고에 대해 중대해체와 같은 파격조치를 취할 것임을 이를 통해 본보기로 보여주셨다.
현재 직원기동대 15개 중대가 있는 서울로서는 전의경 중대가 몇개 없어진다고해서 경력운용에 큰 타격을 받진 않을 것이란 지휘부의 계산이 깔려있는 조치는 아니었나 조심스레 짐작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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