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방금전이었다. 아직 해결안된 몸살로 죽는 소리를 내며 잠을 자고 있던 나를 고참이 깨웠다.
"야, 대박이야! 용산참사가 사실상 해결됐대!"
"에이.....구라...뜬금없이 그게 왜 해결됩니까.."
그렇게 컴퓨터에 앉아 기사를 검색한 순간, 우와. 이거 진짜다. 그 '용산참사'가, 나의 군생활을 가득 채웠던 그 사건이 드디어 끝이 보인다. 용산참사가 터졌을 때 난 일경이었는데, 지금은 조금씩 끝이 보이는 수경이 되어있다. 시간은 참 잘도 간다.
아직도 신기하다. 뭐, 요즘은 소위 '특별방범기간'이라서 내가 소속된 중대와 같은 방범순찰대는 특별한 큰 집회 등이 없는 이상 각 경찰서 관내 방범근무와 교통근무 등 생활치안쪽에 전력투입되고 있어서 용산에 안간지 꽤 됐지만 그 전까지는 내집처럼 오가던게 용산이더랬다.
용산참사현장, 남일당빌딩
2개의 메이저 근무지인 남일당과 용산순천향대병원은 가끔씩 우리동네보다 더 친근하게 다가올정도로 자주 가곤 했다. 일주일에 3~4번은 가서 아침일찍부터 하루종일, 혹은 해질 때 쯤가서 그 다음날 해뜰 때 까지 철야를 하곤 했다.
간혹 '용산에서 터진 사건이니 용산경찰서 소속 전의경이 전담하는 것 아니냐?'라며 물어오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당연히 아니다. 24시간 쉴틈없이 우발대비를 해야 하는데 그것은 말이 안된다. 상설진압중대로 분류되는 기동대, 전경대, 내가 속한 방범순찰대가 상급 지방청인 서울청의 명을 받아 계속 돌아가면서 그 곳에서 근무를 해왔다. 물론 근무편성의 기준이란 것은 없다. 늘 급변하는 매일매일의 치안상황을 고려해 서울전역에 경력배치가 이루어지기 때문에 나도 가끔씩 "아이씨...우리 중대 이 근무지 꽂힌거 아니야?"라는 말이 절로 나올 정도로 자주 가는 때도 있고, 이상하게 안갈 때도 있고, 뭐 그런식이다.
특히 참사현장인 남일당은 내 군생활의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 참사발생직후의 그곳은 아직도 매캐한 냄새가 자욱한 생지옥이었다. 두꺼운 진압복을 껴입고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건물의 2층에서 방패를 앞으로 한채 근무할 땐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다. 실시간 근무인원이 너무 많아서 철야하면서 잠을 거의 자지 못하는 때도 많았다. 그 때 내가 한 것은 원망이었다. 이 참사를 촉발시킨 모든 이에게 향하는 원망이었다.
남일당에서 난 의경이라는 이유만으로, 경찰조직의 일부라는 이유만으로 근무중에 전철연 사람들로부터 "여기가 어디라고 쳐다봐 이 개새끼야!"와 같은 무수한 육두문자를 들었고, 소금을 맞은적도 있었다. 순천향대병원에서도 그 유명한 '문신부'님께 육두문자와 함께 생수병의 물을 맞기도 했다. 그는 마치 마귀를 쫓는 엑소시즘 의식을 행하며 성수를 악마에게 뿌리는 양 장례식장 정문에서 근무중이던 내게 물을 뿌리며 욕을 했다.
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아무런 반응도 하지 말라는게 상부의 방침이었다. 말은 쉬웠지만 그것을 막상 당하는 입장에서는 분을 금할 수 없었다. 솔직히 그랬다. 나를 포함한 모두가 이를 갈았다. 가끔 그들을 증오했다. 난 그들이 그렇게 부르짖는 폭력경찰도 아니었지만, 그저 폭력전경의 일부, 경찰의 꼭두각시로 싸잡아 매도될 뿐이었다.
지난 1월 말에 터져서 지금까지 그 여파가 지속됐던 용산참사. 나를 비롯한 서울에서 군복무중인 전의경에겐 어마어마한 의미를 가지고 있을 것이다. 내 군생활의 1년 조금 안되는 시간을 가득 채운 바로 그것. 내 군생활이 정확하게 22.5개월인 것을 감안하면 절반 이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듯.
아직도 믿기지 않는다. 정말 끝나는 것일까? 이래놓고 또 협상결렬이라고 다시 각을 세우면 어떡하지? 한 달도 남지 않은 '용산참사 1주년'과 관련된 대형집회를 예상하며 조용히 날짜를 세오던 나에겐 아직도 꿈만 같다.
애초부터 난 정치적인 측면엔 관심주고 싶지 않았다. 앞으로도 마찬가지다.
이제 매듭이 지어진다는 바로 이 참사. 더이상의 정치적 논란은 다 제쳐두고, 소중한 생명 6명이 아무 이유없이 고통스럽게 세상을 떠났다는 것에 모두가 초점을 맞추면 좋겠다. 지금 이 시점에서라도.
그 날도 안전진압을 목표로 가족의 품을 떠나 자신의 임무를 성실히 수행하다가 세상을 하직한 경찰특공대 故 김남훈 경사와 살기위해 투쟁하다가 하늘로 간 용산철거민 5명 모두의 명복을 빈다. 이 다섯분 모두 이제는 차가운 순천향대병원에서 나와서 제대로 된 장례를 치르고 모든 것을 잊고 떠나갔으면 좋겠다.
p.s. 지금 이 시간도 용산에서 추위와 싸우며 열심히 근무중인 동료 전의경 대원들, 함께 고생했던 경찰직원분들도 이제 한 시름놓을 수 있길.... 모두들 수고 많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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